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란 본래는 ‘나라나 정든 고장을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초현실주의 미술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면서 새로운 의미가 추가 되었습니다. 초현실주의에서의 데페이즈망이란 "일상적인 관계에서 사물을 추방하여 이상한 관계에 두는 것"을 말하는데요, 즉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어떤 물건이 있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조르주 데 키리코와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작품들
데페이즈망 기법은 대부분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라 불리는 이탈리아의 화가, 조르주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와 벨기에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작품에서도 데페이즈망 기법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현실주의와 데페이즈망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은 폐허로 변하게 되고, 전쟁 후 폐허로 인한 상실감이 커짐에 따라 사람들은 기존의 전통, 이성, 합리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예술가들이 끔찍한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꿈과 무의식 등 또 다른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요. 결국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간하고 부터,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러한 초현실주의의 움직임이 나타나게 됩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와 그의 정신분석학 저서들
초현실주의자들은 특히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영향을 받아,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이성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시키고 인간 정신을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성이 배제된 상태를 표현하기란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는데요. 때문에 초현실주의자들은 다양한 기법들을 고안해 내게 됩니다. 그중 한가지 기법이 바로 '데페이즈망'이었는데요. '데페이즈망'은 일상적인 사물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인 표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로트레아몽이 쓴 초현실주의 시의 한 구절을 시각화한 작품, Agnès Varda, <Beau comme...>, 2014
초현실주의 시인, 로트레아몽(Comte de Lautreamont, 1846-70)가 쓴 초현실주의 시에는 “재봉틀과 양산(洋傘)이 해부대에서 만나듯이 아름다운”이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이 유명한 이유는 초현실주의와 데페이즈망 기법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이기 때문인데요. 이 구절은 재봉틀과 양산같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체도 해부대와 같이 낯선 공간에서 만나게 되면, 시각적으로 충격을 주어 초현실의 느낌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폴 델보(Paul Delvaux), <All the lights>, 1962
데페이즈망 기법을 사용하는 현대미술 작가들
이렇듯 데페이즈망은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아나, 새로운 시각으로 이전에 없던 이미지들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창의성과 상상력이 화두가 되고 있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필요한 자세인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오늘날의 화가들은 데페이즈망 기법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요?